할아버지는 늘 라디오를 가지고 다니셨다. 이동하실 때에는 라디오 줄을 길게 늘려 목에 걸어 라디오가 명치쯤 내려오게 달랑달랑 다니셨고, 들일을 하실 때에는 한 켠에 라디오를 놓아 두고 볼륨을 키워 일하시는 내내 틀어 놓으셨다. 사실 라디오는 할아버지가 아침에 일어나신 때부터 저녁에 방으로 들어와 자바라 텔레비전을 켜기 전까지 늘 틀어져 있었다. 

할아버지가 가지고 다니던 라디오는 꼭 이렇게 생겼다. 물론 60년대 아리랑 라디오는 아니지만 생김은 같다. 벽돌만큼 투박한 생김새를 가죽 케이스로 가렸는데, 매일 같이 하루 종일 라디오를 들으시니 저렇게 조그만 배터리가 아닌 라디오만한 대형 배터리를 물려서 정말로 부피가 벽돌 한 장 보다 큰 라디오를 그렇게 애지중지 목에 걸고 다니셨다. 아버지께서 소형 라디오를 사주신 적도 있는데 며칠을 못 가 꼭 가죽케이스에 담긴 라디오를 가지고 다니셨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아리랑 라디오 세대인 할아버지께는 디자인이 곧 지난했던 세월의 흔적이고 그 만큼 아련한 추억이었던 것 같다. 

할아버지의 낮은 라디오가 밤은 자바라 문 안의 텔레비전이 함께했다. 늘 엄하고 고집불통 불퉁불퉁한 성격 탓에 우리 가족보다 수다쟁이 라디오가 허풍쟁이 텔레비전이 할아버지 품 안에 들 수 있었다. 둘은 이해를 구하지도 상처 받지도 않는다. 켜면 침묵을 삼켜주고 끄면 침묵을 돌려 줄 뿐이다. 날을 세운 시사 방송도 구구절절한 사연의 방송도, 걸죽하거나 투명한 음악 방송도 모두 할아버지의 벗이었다. 

할아버지 집에는 부엌의 가스렌지 아래 오른쪽 서랍을 열면 늘 분말 분유가 있었다. 아버지가 학교를 다니실 때 탈지분유를 배급 받곤 했다고 하셨는데, 그런 분유였지 싶다. 다 큰 어른인 할아버지께서는 그 또한 추억인지 우유 대용인지 하루 일과처럼 따뜻한 물에 타 드셨다. 그런데 이게 물에 타지 않고 한 숟갈 입 안에 털어 넣고 녹여 먹으면 조금 짭조름하면서 달달하니 꿀맛이었다. 할아버지의 라디오를 떠올리다보니 문득 그 분유 맛이 입 안의 침샘을 자극하는 것 같다. 아셨을 게다, 할아버지는, 손주의 도적질을. 할아버지, 우리는 분유를 나눠 먹는 사이였어요. 

시간이 많이 흘렀다. 밤길, 사람들은 휴대폰으로 자기 얼굴을 환하게 비추며 걷는다. 할아버지의 라디오가 떠오른다. 



“미디어는 어떤 모습이어야 될까?”라고 묻는다면 왠지 정의의 여신이 떠오른다. 엄숙한 당위의 무게. 반면, “미디어는 어떤 모습일 수 있을까?” 혹은 “미디어는 어떤 모습이어도 괜찮을까?”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때 먼저 떠오르는 심상을 언어로 풀어내면, 가벼운 바람같은 미디어다. 기술의 발전은 이를 1인 미디어라는 형태로 가능하게 하고 있다. 

1인 미디어란 개인이 만든 콘텐츠를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해 송출하는 것이다. 텍스트에 머물러 있던 1인 미디어는 인터넷 속도 발전과 컴퓨터와 휴대전화를 비롯한 IT 기기의 가격 하락과 성능 향상으로 영상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게 되었다. 쉽게 영상을 찍고 인터넷으로 공유할 수 있게 되면서 초기에는 UCC에 관심이 몰렸다. 호기심, 신기함, 재미가 맞물렸고 유사성, 동질성을 참 중요하게 여기는 반도다보니 UCC 영상은 가히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거친 파도 같았던 UCC 열풍은 쉬이 포말로 흩어졌다. 이유는 간명하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지만 배고픈 고래의 배를 불려 주지는 않는다. 

UCC가 유행했던 당시에는 UCC는 놀이에 머물 수 밖에 없었다. UCC가 범람했던 당시에도 ‘별풍선’이 있고 광고 수익 쉐어 프로그램이 있었다면 그 양상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1인 미디어, 1인 크리에이터가 많아진 것은 기반이 되는 뒷단의 통신기술, 온라인 결제 수단과 광고 기술, 대용량 파일 처리 기술, 소셜미디어 등이 복합적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1인 미디어의 기반은 인터넷이다. 2000년도에도 인터넷 방송은 있었다. 제임스딘으로 히트를 친 주병진 씨가 세운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인터넷 방송국이 그 해 4월에 개국했었다. 당시 유명세를 떨치던 그의 지인들인 이경실, 이성미, 박미선, 이홍렬을 비롯 황봉알, 김구라 등의 개그맨들이 주축이 되어 지상파에서는 할 수 없는 파격적인 인터넷 방송을 만들어 독자적인 플랫폼에서 시청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2000년이면, 겨우 하이텔, 나우누리 같은 PC통신에서 벗어나던 때라 인터넷 속도가 느렸다. 웹사이트를 만드는 이들은 작은 이미지도 최적화를 위해 열대여섯 조각으로 잘라서 올리던 때다. 그런 때에 독자적인 인터넷 방송 서비스라니, 방향은 옳았지만 시기가 앞섰고 일찍 접어 빛을 보지 못했다. 

2002년에 세이클럽 라디오 방송이 나오고, 어쩌면 세계 최초라는 동영상 공유사이트인 판도라TV가 2004년에 나오면서 영상 공유가 차츰 일상으로 들어 왔다. 그리고 2006년에는 아프리카TV가 개국하고, 같은 해 10월 구글은 유튜브를 16억 5천 달러에 인수했다. 하지만 서비스 초기에는 방송 진행자(BJ, Streamer)가 수익을 낼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유튜브에서 구글의 애드센스를 확대해 영상에 광고를 넣기 시작한 건 2007년 10월 경이고, 아프리카TV에서 별풍선을 도입한 건 그해 11월경이다. 이렇게 수익화의 길이 열리면서 영상 부문에서도 전업 1인 미디어, 1인 크리에이터가 나올 수 있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프리카TV의 크리에이터, BJ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연 1억에 이어 곧 월 1억 이상의 수입을 올리는 BJ가 나오게 되었고, 곧 이들을 묶어 연예기획사처럼 관리해주는 MCN(Multi-Channel Network) 사업자들이 등장한다. (MCN은 유튜브 내에서 사용하던 명칭으로 유튜브 밖을 벗어나면 MPN(Multi-Platform Network)이라 사용하기도 하지만, 국내에서는 MCN으로 통칭된다.) 우리나라에서는 1인 크리에이터가 아프리카TV의 BJ로 대변되고 있어 별풍선을 받기 위해 자극적인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선입견이 강한데 세계로 눈을 돌려보면 MCN의 산업 규모는 이미 놀라운 수준이다. 월트디즈니, 드림웍스 등의 글로벌 기업들은 수조원을 1인 미디어와 창작자를 육성하는 다중 채널 네트워크에 투자했다. 어느 정도 산업화가 진행되고 있는지는 몇 가지 수치만으로도 가늠이 가능할 것 같다. 지난 달 발행된 이은영 님의 <MCN 백만 공유 콘텐츠의 비밀>  중 일부를 발췌했다. 


- 메이커스튜디오에는 6만여 명의 소속 크리에이터가 전 세계 100여개 국가에서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유튜브 운영 채널이 5만 5천 개가 넘는다. 이 시청 데이터를 기반으로 메이커셀렉트라는 자체 광고 솔루션을 15년에 론칭했다.
- 자신과의 대화를 1인 다역으로 진행하는 중국의 크리에이터 파피장은 올 4월 자신의 방송에 붙일 광고를 경매에 부쳤는데 7분만에 무려 2200만 위안에 상하이의 화장품 기업인 리런리장에 낙찰됐다고 한다. 벤처캐피털사들은 파피장에 1200만 위안 한화로 약 20억 원을 투자했다. 인터넷 상의 유명인을 일컫는 왕뤄홍런을 줄여 왕홍이라 한다. 중국은 왕홍경제라는 말이 생겨났다.
- 2016년 3월 일본 마이니치 신문에 오사카 소재 한 초등학교 4학년 남학생 대상의 장래희망 설문 조사 내용이 기사화됐는데, 3위가 유튜버였다. 1위는 축구선수, 2위 의사, 4위 공무원.
- 일본의 탑 크리에이터인 히카킨의 추정 연수입은 약 2억엔이다. 2위는 엽기실험 크리에이터로 불리는 하지메사쵸로 추정 수입은 1억 6600만 엔이다. 이 둘은 움(UUUM) 소속이다.
- 글로벌 크리에이터. 2015년 유튜브 수입 기준. 게임 전문 크리에이터 퓨디파이(PewDiePie)는 1200만 달러, 패러디 전문 스모쉬(Smosh) 15년 수입 850만 달러, 리액트 시리즈로 유명한 파인 브라더스(Fine Brothers) 850만 달러, 린지 스털링(Lindsey Stirling) 600만 달러, 게임 전문 KSI450만 달러, 메이크업 전문 미셸 판(Michelle Phan) 300만 달러.
- 국내 크리에이터들도 연수입이 10억을 넘어가는 게임 크리에이터인 양띵은 174만, 게임 방송을 하는 대도서관은 10월 현재 129만명, 뷰티 크리에이터인 씬님의 구독자는 110만 명, 키즈 영상 전문 캐리와장난감친구들 115만, 여캠 김이브 102만, 먹방 밴쯔 99만, 병맛 영상을 주로 올리는 쿠쿠크루 68만, 영어교육 디바제시카 64만, 더빙전문 유준호 48만 명의 유튜브 채널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레거시 미디어처럼, 1인 크리에이터들이 고수익을 내는 분야도 일종의 엔터테인먼트다. 게임, 뷰티, 먹방, 언박싱과 같은 유아 프로그램에 고수익 크리에이터들이 몰려있다. 예전 같으면 전파가 아깝다했을 소재들일 수 있는데 이제는 당당히 하나의 방송 포맷이다. 방송의 주 시청자는 역시 ‘전파가 아깝다’는 표현이 낯설 밀레니얼 세대다. 온라인 플랫폼의 크리에이터들은 그 인기에 힘입어 유튜브나 아프리카TV 같은 동영상 공유 플랫폼을 벗어나 레거시 미디어로 운신의 폭을 넓히기도 하고, 오픈마켓이나 특정 브랜드와 연계해 자신의 방송에서 상품을 팔아치우기도 하며, MCN과 함께 오리지널 콘텐츠를 생산해 내기도 한다. 

“엄마는 엄마 TV 보세요.” 요즘 세대의 TV는 타블렛이나 스마트폰 등의 모바일 기기다. 유선방송이 아닌 무선 스트리밍 서비스로 영상을 즐기는 코드 커터Cord cutter인 그들은 말을 건네면 반응해 주는 1인 크리에이터들의 방송에 더욱 공감과 위로를 느끼며, 빠르고 직접적인 피드백이 특징이다. 카메라는 갈수록 작아지고 라이브는 일상이 되었다. 360도 촬영을 넘어 드론으로 스트리밍 방송을 할 수 있는 시대다. 이들은 원한다면, 일상이 On Air다. 그러니 혼자 잠자는 모습을 라이브로 방송하는 게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세대다. 무정형의 미디어 시대다. 

밀레니얼 세대의 41%가 코드커터라고 하는데, 미국의 경우이긴 하나 이는 당장 광고 시장에서 디지털 미디어에 집행하는 광고가 TV를 능가하는 시대로 만들어 놓았다. 광고 시장 역시 불특정 다수를 향해 TV 광고를 틀던 시대에서 온라인에서 타겟 광고로 중심이 이동했다. 국내 지상파의 광고점유율 역시 지속적으로 하락세에 있다. MBC는 광고 매출 실적이 전년대비 700억 이상 감소할 것을 예상해 10월부터 긴축 경영 강화에 나서겠다고 한다. 

이런 변혁에도 레거시 미디어의 언론 기능을 대체하기는 쉽지가 않다. 언론은 어쩌면 가장 자본집약적인 미디어 장르일지도 모른다. 한 개인이, 혹은 소수의 집단이 기존 매스미디어처럼 글로벌하게 취재를 하고 지난하게 여러 단계의 게이트 키핑 과정을 거치고 파급효과를 낼 수 있을 정도의 구독자를 확보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때문에 매스미디어에서 1차적으로 생산된 ‘뉴스’에 의견을 더해 재가공하는 시사방송을 하는 1인 미디어는 다수지만, 직접 취재를 해서 사실을 캐내고 논조를 밝히는 미디어는 적다. 그럼에도 한국의 저널리즘에 혁신을 가져올 수 있는 새로운 미디어 스타트업을 전문으로 하는 엑셀러레이터도 생겨나고, 기존 저널리즘의 전달 문법을 벗어나 밀레니얼 세대의 소통 문법에 맞춘 닷스페이스나 알트 같은 작은 미디어 집단의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모두가 초인이 될 수 없고, 보통 사람들의 삶은 저마다의 무게로 쓸쓸하다. 그들에게,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나은 세상을 위한 구호보다 일상의 작은 공감과 위안이 먼저다. 1인 미디어가 생산해내는 콘텐츠 역시 그런 관점에서 이해한다. 무익한지 아닌지는 참여하는, 시청하는 이들이 판단할 몫이다. 다만 일상의 무게에도 누군가는 더 나은 내일을 고민할테고 그들과 함께 말문을 트고 머리를 맞대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혼란스러운 양상에도 둘 모두에 열려 있고 싶은 욕심이 여기에 있다. 

“미디어는 몇몇 자본이나 소수의 집단을 위한 것이 아니다, 모두를 위한 것이다.” 미디어센터도 센터별로 그 성향과 지향이 조금씩 다르지만 그럼에도 한 가지 공유하는 믿음이 있다면, 아마도 이 문장에 집약되어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이 한 마디가 이 바닥에서는 공리다. 

기술의 발전에 의해 미디어 분화가 촉발되었다. 1인 미디어 혹은 소자본 미디어가 기존의 매스미디어를 대체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들에 의해 조금 더 수평적인 커뮤니케이션, 조금 더 넓은 스펙트럼의 영상 문화가 펼쳐지게 될 것을 기대한다. 또 그 기대만큼 미디어센터에서 1인 미디어, 1인 크리에이터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과 지원에 대한 고민을 놓지 않아야 됨을 안다. 시민 한 명 한 명이 1인 미디어이고, 크리에이터라면 미디어센터는 MCN으로서의 몫 또한 고민해야 될 것이다. 그것이 마을미디어로 묶일 수도 있고 다른 이름의 다중 채널이 될 수도 있을 테다. 

군에서 2차 정기휴가를 나와 진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차창을 스쳐가는 풍경을 보다가, 문득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것 같다는 직감을 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다음 날 검지와 중지를 모아 할아버지 인중 밑에 대고 호흡을 확인해야만 했다. 


며칠 뒤 할아버지 무덤에, 라디오를 올려 드렸다.


글: 진주시민미디어센터 김민재


7월 4일, '진주시민미디어센터'에 입사를 했다. 그로부터 한달이 지났다. 센터에서의 한 달을 이야기 하기 전에, 먼저 '왜 센터를 선택하게 되었는가.'를 말하겠다. 나는 학교에서 영화학을 전공 했다. 영화감독을 꿈꾸던 열아홉의 소녀는 호기롭게 영화와 예술을 공부하는 전공을 택했다. 


그러나 영화에 대한 환상은 강도 높은 촬영과 끝날 줄 모르는 편집으로 인해 깨지고 말았다. 멋진 장면 하나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강도 높은 노동을 필요로 했다. 촬영현장은 빠르고 거칠게 돌아갔다. 현장에서 일하기엔, 나는 너무 여렸다. 


영화감독이란 꿈을 포기한 나는, 영화를 비롯한 문화콘텐츠를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돕고자 결심했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에겐 '창작의 기회'를, 영화를 보는 사람에게는 '다양한 문화적 선택권'을 제공하고 싶었다. 


진주는 내가 태어나고, 스무해 넘게 살아온 나의 고향이다. 문화를 접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은 진주. 나는 고향 진주의 문화 저변을 넓히고, 경남에서 활동하는 예술인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진주시민미디어센터'에 지원하게 됐다.  


그렇게 입사하게 된 진주시민미디어센터에서의 첫날. 나는 하얀 스타렉스를 타고 대표님과 함께 통영으로 떠났다. 통영 벅수골 소극장에서 열릴 '우리동네 TV 교실 발표회'를 위해서였다. 소극장에 들어서자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낯선 공간, 낯선 사람들. 입사 첫번째 미션은 '낯섦에 당황하지 않기'. 나는 어색한 웃음을 머금은 채 인사를 나누고선, 대표님을 따라 장비를 세팅하기 시작했다. 


준비를 모두 끝내고 자리에 착석하자마자, 소개와 함께 영상이 시작되었다. 통영 지역민들이 함께 만든 서피랑 홍보 CF. 영상은 처음 카메라를 잡고 편집을 했다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함께 카메라 구도를 고민하고 편집을 반복했던 흔적이 남아있었다. 그렇게 상영이 끝난 후, 우리는 함께 자유로이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즐거워 보이는 그들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나는 고등학교와 복지관에서 진행된 미디어교육 수업에도 참여했다. 센터 수진쌤을 따라서였다. 영상을 직접 만든 도움반 친구들을 알게 되었고, 사진책 작업을 배우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만났다. 낯설었지만,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그들의 모습에 나도 진심을 다해 도움이 되고자 노력했다. 통영에서처럼, 그들도 역시 대화와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나는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미디어교육은 ‘배움’이자 ‘소통의 장’이라는 것을. 가르치는 사람, 배우는 사람 모두, 함께 즐기며 성장해나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상영 부문은 정주쌤의 지도 아래 배워나가고 있다. 8월 정기상영과 9월에 있을 <진주같은영화제>를 준비한다. 영화를 선정하고 기획하는 과정에서, 다시 한 번 나의 무지를 깨닫는다. 내가 보지 못했던 재밌고 좋은 영화들이 너무 많다. 또한, 시민 프로그래머 분들을 보며 나의 나태함을 깨닫는다. 처음 영화공부를 했을 때의 마음으로 돌아가,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공부해야겠다. 


나는 입사 한달차 신입이다. 미디어교육과 상영 등 진주시민미디어센터 활동 전반에 대해 배워나가고 있다. 아직 서툴고, 모르는 것이 많다. 그렇기에, 아직 배우고 채워나가야 할 부분들이 많다. 정직하게, 그리고 제대로 해나가고 싶다. 또한 소통해 나가고 싶다. 센터에서는 서로를 '활동가'로, 사람들은 센터 사람들을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방관자처럼 지내왔다, 나는. 세상과 삶에 적극적으로 부딪히지도 않았고, 사람들과 세상 일에 무관심했다. 이제 가장 중요한 입사 미션이 남았다. ‘방관자가 아닌, 진짜 활동가 되기.’ 나는 진주시민미디어센터와 함께 좀 더 적극적으로 삶에 부딪히고, 사람들과 소통해 나갈 것이다.


글: 진주시민미디어센터 구민지


CJ헬로비전 우리동네TV교실은 CJ헬로비전에서 진행하는 사회환원 사업으로 올 해가 3년차다. 미디어교육을 통해 시민들이 제작한 영상을 헬로비전에서 송출까지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전국 3개 지역에서 처음 시작해 올 해는 8개 지역으로 확대 진행됐는데, 통영은 이번에 처음 참여하는 지역이다. 올 해는 30초 짜리 지역의 관광명소 TVCF 두 편과 10분짜리 메이킹 영상 제작이 숙제였다.


두 번째 만남이다. 지난 해 CJ 도너스캠프 꿈키움창의학교 후 두 번째 참여하는 CJ 사업이다. 꿈키움창의학교는 지난 해 미디어 부문이 신설되어 4개의 미디어센터가 참여했다. 각 지역별로 단편영화, 보이는 라디오, 뉴스 등의 다른 형식으로 제작한 영상을 서울에서 통합발표회를 열어 선보였다. 통영여중은 국정화교과서 논란과 주말 나들이 코스로 연화도를 소개하는 두 꼭지로 구성된 뉴스 포맷으로 발표를 했다. 학생들의 만족도가 높았다. 하지만 처음 지방에 기회의 문을 열어줬던 꿈키움창의학교는 운영이 부담스러웠던지 올 해부터는 다시 인천과 수도권역에 한해서만 진행한다고해 아쉬움을 남겼다.



꿈키움창의학교와 마찬가지로 우리동네TV교실도 헬로비전 송출지역에서만 참여할 수 있다. CJ헬로비전 경남방송의 송출 지역이 고성, 거제, 통영이다. 이 중 통영이 선정됐다. 꿈키움창의학교를 진행했던 경험도 경험이고, 다른 지역에 비해 여름에 맞는 색을 찾기 쉬울 것 같은 이유에서다. 문제는 세부적인 사업지역이었는데, 통영여자중학교를 다니면서 알게 된 서피랑을 우선순위에 올렸다. 


통영시 인구는 작다. 15만 정도다. 하지만 한 해에 66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명실공히 대표적인 관광도시다. 아름다운 섬도 섬이지만 동피랑과 같은 내륙 관광지도 한 몫 한다. 그리고 덜 알려진 인구 4,000명 남짓의 명정동이 중심인 서피랑이 있다. 동피랑에서 불과 1키로미터 거리다. 하지만 동피랑으로 유입된 관광객들은 중앙시장과 여객선터미널을 출구삼아 흩어진다. 지척거리에 서피랑이 있음에도. 관광벨트로서 서피랑은 통제영에서 충렬사를 잇는다. 서포루가 있는 서피랑만이 다가 아니다.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보통이 아니다. 다만 아직 제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관심을 두게 된 이유다. 무엇보다 서피랑은 지금 변모 중이다. 제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서피랑을 사업지역으로 선정하게 된 이유다.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고 하듯 교육도 혼자 만의 움직임으로 되지는 않는다. 


우리동네TV교실 교육생들은 서피랑 인근에서 자영업을 하시는 통영시민 분들로 꾸릴 수 있었다. 서로 호칭을 'OO쌤'으로 하기로 해 서피랑쌤즈로 통칭되는 모임이 됐다. 통영 토박이 분들과 최근에 통영으로 거주지를 옮긴 분들이 절묘하게 섞여 있다. 그 점이 좋다. 어느 한 쪽의 사람들만 모였다면 배타적인 그룹이 되기 쉬웠을 테다. 더구나 서피랑쌤들의 서로 다른 재능 덕분에 모일수록 시너지를 발휘한다.


홍보영상은 애초에 소매물도 1편, 서피랑 1편으로 계획을 잡았다. 서피랑은 이야깃거리는 많지만 영상으로 풀기에는 어려울 것 같았다. 여름에 어울리는 영상은 아름다운 소매물도의 풍광이면 충분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처음 교육생 모집차 만났던 장원쌤, 미연쌤, 우현쌤들이 두 편다 서피랑을 주제로 찍길 바라서 소매물도를 내려 놓았다. 사실 영상미로만 본다면 등가교환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조력자라는 걸 잊지 않아야 한다. 주인공은 서피랑쌤즈다.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멀리보면 옳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지만 영상 주제를 끌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난항이었다. 시간은 지체되고 더는 미룰 수 없어 빠른 선택만이 남은 상황이었다. 그렇게 채택된 주제가 한 편의 영상은 서피랑 이름 석자를 알려보자는 취지로 SSG 패러디를, 다른 한 편은 실제 서피랑에 들렸을 때 다녀볼 수 있도록 서피랑의 아름다운 장소를 담아 보기로 했다. 주제는 달라도 광고의 주 타켓층은 20~30대 여성이다. 여행과 새로운 것에 가장 적극적인 동력을 가진 층, 이들의 관심을 끄는 것이 우선이라는 판단에서다. 트렌디한 익숙한 컨테이너에 내용만 달리 넣어서 보여주는 방식으로 접근하게 된 이유다. 


촬영은 서피랑쌤즈의 열의 때문에 순조로웠다. 배우를 섭외하고 의상과 소품을 준비하고 콘티를 짜고 모든 과정이 척척척이었다. 하루에 한 편씩 이 틀에 걸쳐 두 편의 서피랑 TVCF 촬영을 마쳤다. 아쉽지 않을 수야 없겠지만 빠듯한 일정 속에서 적어도 서피랑쌤즈는 최선을 다했다. 편집도 마찬가지. 처음 다뤄보는 영상편집 툴인 베가스로 직접 더빙해가며 편집을 마쳤다. 


그렇게 바삐 달려온 일정의 쉼표는 7월 4일 통영 중앙시장 안에 있는 벅수골에서 찍었다. 서피랑 홍보영상과 메이킹영상의 상영회 겸 수료식이었다. 마땅한 공간을 찾지 못해 애태우고 있던 차에 미연쌤의 수고와 은영쌤의 은근묵직한 지원에 벅수골의 호의까지 더해져 무료로 진행할 수 있었다. 



이번 미디어교육은 전례 없이 싱글 페이지 웹사이트도 만들었다. 추후 서피랑 홍보영상이 연계될 수 있는 그래서 서피랑쌤즈가 더 관심을 받을 수 있게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였다. 대표 주소는 장원쌤이 보유한 seopirang.info다. CJ헬로비전 송출을 통해 서피랑을 알지 못하는 분들께 다가설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온라인에서 더욱 입소문이 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이기와 이타는 배타적인 관계가 아니라 공존하는 서로 성질이 다른 에너지일 뿐이다. 다만 어느 한 쪽에만 기댈 때 그 에너지는 쉬이 휘발한다는 게 나름의 믿음이다. 이번 교육은 이타와 이기의 조화를 꾀해야 하는, 그 경계에서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과정이었다. CJ헬로비전, 통영 시민들, 진주시민미디어센터 이 세 주체가 가지고 있는 최소한의 이타심으로 최대한의 실리를 끌어내는게 스스로에게 부여한 과제였다. 때문에 교육 결과물의 임팩트가 중요한 척도였다. '해봤어, 즐거웠어.'에서 끝이 아닌. 물론 10차시의 교육 과정은 짧았으며, 어웨이 교육은 단순히 시간 이상의 비용이 들었고, 지갑은 얇았다. 


CJ헬로비전의 지원으로 시작한 교육은 끝났다. 이제부터는 마감일이 없는 사후 교육의 시간이다. 50일 간의 만남이, 그 시간이 함께한 서피랑쌤들의 가슴에 작은 씨앗이 되었다면 앞으로는 그 씨앗을 알뜰살뜰 보살피고 키워 나가는 일이 남았다. 이제부터는 관계다. 그 사이에 미디어가 있을 뿐이다. 원래 그러해야 하듯.


글: 진주시민미디어센터 김민재


서피랑 홍보 CF 제작 프로젝트! CJ 우리동네 TV 교실 발표회가 열렸습니다.

 

서피랑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 모였던 서피랑쌤Z!
나이도 성별도 직업도 모두 다르지만, 통영과 서피랑의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영상을 만들겠다는 의지만은 모두 한마음이었는데요-
 낯설고 어색했던 만남을 지나, 이제 팀원들은 서로를 바라보기만 해도 웃음이 터집니다.
서툴지만 즐거웠던 촬영과 편집을 모두 끝내고, 이제는 완성된 CF를 사람들에게 발표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긴장과 웃음이 있던 발표가 끝나고, 함께 질의 응답 시간도 가졌습니다. 서피랑쌤Z 분들이 직접 준비해오신 커피와 다과도 먹고, 
                    준비했던 자석 기념품도 나눠드렸는데요! 다들 좋아하시는 모습에, 저도 내심 기뻤죠!
                     수료증을 전달하는 것으로 발표회를 마치고, 저희는 함께 진미식당으로 가 맛있는 점심도 먹었습니다.
   
                     즐거웠던 발표회가 지나고, 쌤들 얼굴에는 헤어짐의 아쉬움이 가득했는데요....
 
                     CF 제작 프로젝트는 끝이 났지만, 서피랑의 아름다움과 썜들의 인연은 쭈욱~~~~ 되겠습니다아! 

       

 


글: 진주시민미디어센터 구민지


미디어센터에서는 어도비 사의 제품을 여럿 사용 중입니다. 만인의 연인 포토샵에서부터 라이트룸, 일러스트레이터, 영상 편집을 위한 프리미어와 애프터이펙트, 웹사이트 제작과 관리를 위한 드림위버 등이 있는데요. 기존의 설치형과 최근의 월 정액제 기반의 서비스형이 공존하고 있는 과도기입니다. 테크숩에서 어도비 제품군의 월 유지비용을 낮춰준다면 미디어센터에서도 앞으로 최신 기능이 탑재된 동일한 버전의 소프트웨어로 미디어교육을 진행할 수 있을 텐데요. 당분간은 희망사항에 머물 것 같습니다.


미디어센터에서 진행하는 미디어 교육은 단순히 기술에 대한 이해가 목적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기술적 진보가 미디어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주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최신 기술 동향에도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어도비의 크리에이티브 컨퍼런스 <MAKE IT EVERYWHERE 2016 TOUR>에도 그런 연유로 다녀왔습니다. 


MAKE IT. EVERYWHERE는 어도비가 서울을 포함한 아시아 태평양 지역 9개 도시를 순회하며 개최하는 크리에이티브 컨퍼런스라고하는데요. 어도비는 이 컨퍼런스를 통해 각국의 크리에이티브 전문가들과 함께 영감과 아이디어를 논하고 크리에이티브 클라우드의 최신 업데이트도 공개하고 있다고 합니다. 행사는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5층 그랜드 볼룸에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진행됐습니다. 



빈속으로 행사장에 도착했는데 마침 미니머핀과 커피가 준비되어 있어 간단히 머핀 한 줄과 커피 한 잔으로 아침을 대신했습니다. 물론 행사장 내에 진행되는 협력사들의 이벤트에 참여하는 것도 잊지 않았죠. USB 모기향, MS Surface 케이스, 16GB USB 메모리, 부채 등을  챙겼습니다.


행사장 로비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건 다름아닌 어도비 캐릭터 애니메이터였습니다. 벡터 캐릭터를 넣어주면 캠으로 안면을 인식해 캐릭터가 움직이게 해주는 프로그램이었는데요. 도리도리하면 캐릭터도 도리도리, 앞으로 가면 캐릭터가 커지고 뒤로 가면 작아지고, 마이크를 켜고 말을 하면 캐릭터의 입모양도 같이 움직이는 재미있는 도구였습니다. 마우스나 터치스크린에 제스처로 팔도 같이 움직일 수 있고요. 미디어교육에서도 많이 활용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컨대 아이들이 캐릭터를 그리면 벡터 이미지로 변환해서 아이들이 만든 스토리에 맞춰 더빙을 입혀 애니메이션을 만들면 좋을 것 같습니다. 비트맵 이미지를 벡터로 변환시키는 과정에서 선생님의 품이 조금 들긴하겠지만 아이들이 무척 좋아할 것 같습니다.



주최측 발표에 따르면 약 800명 정도가 참여했다고 하는 데요. 언뜻 보기에 90% 이상은 여성분들이었습니다. 디자인 관련 종사자 분들이 많이 오셔서 그런 것 같았습니다.



참가자들이 제출한 작품을 전시한 포토월입니다. 왼쪽에서 핑크색 작품 옆에 있는 작품이 가장 많은 표를 받아서 MS Surface Pro4를 경품으로 받았습니다.



캘리그라피와 캐리커처 존이 있어서 1인 당 하나씩 주는 부채에 둘 중 하나를 담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진주같은영화제도 이제 두 달 밖에 남지 않았기도해서 캘리그라피로 제9회 진주같은영화제 진주시민미디어센터로 써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예쁘죠? 



어도비 코리아 에릭 최 대표의 환영사가 끝나고 TBWA 코리아 박웅현 대표의 기조 연설이 이어졌습니다. 이번 어도비의 크리에이티브 컨퍼런스에서 가장 좋았던 강연을 세 개만 꼽자면 박웅현 대표의 <Challenge & Change 창의력으로 극복하라!>와 JTBC 남궁유 디자인 총괄의 <우리 마음속의 자전거(A bicycle for my mind) - JTBC 브랜드 영상 제작사례>, <업계 최고의 디렉터 3인이 제시하는 UI/UX의 미래> 세션 중 황병삼 디파이 대표의 강연입니다. 어도비 직원들의 툴에 대한 강연은 입문 수준의 내용이라 많이 지루했습니다. 기술 강의는 단순히 매뉴얼 소개만으로는 흥미를 끌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박웅현 대표의 강연 중 기억에 남는 내용 일부를 옮겨보면 이렇습니다.

창의력은 발상이 아니다.
발상은 창의력에서 중요하지만 작은 부분일 뿐이다.

중요한 건 실행력이다.
그게 이 업계에서 29년 동안 배운 것이다.

처음에 나온 아이디어가 끝까지 간 적이 없다.

처음에는 미약하다. 뭔가 이상하다.

그렇게 채워나가게 된다.

그렇게 완성된다.


아이디어는 벽돌이 아니다.
씨앗이다.
내일까지 아이디어 10개 가지고와는 아이디어를 벽돌로 보는 것이다.

씨앗이기 때문에 정말 조심히 다뤄야 한다.


너무 일에 어처구니가 있다.
너무 상식적이다.
남이 하는 걸 똑같이 하면서 새로운 걸 얻으려고 한다.

미친 짓이다.

어처구니 없는 짓을 하라.


안을 줬을 때 감독이 그림이 보인다고 하면 고민된다.

뻔한 결과가 나오길 때문에.

해봐야 알 것 같다고 했을 때

오히려 긴장이 된다.

뻔하지 않은 것이 나올 수 있다.


제일 처음하는 일에는 프로토타입이 없다.

우리가 지금 하는 생각

다른 누군가가 하고 있을 것이다.

언젠가 누군가가 만들어 낼 것이다.

중요한 건 먼저 지금 만들어 내는 것이다.


내 목표는

말하는 사람조차 발견하지 못한 말의 가치를 발견하는 게 내 목표다. 

내가 좋은 발상을 할 수 있길 기대하지 않는다. 

나는 좋은 씨앗을 발견한 뒤 

온갖 통촉하옵소소를 뚫고 가고

중간에서 길을 잃지 않을 수 있게 하는 것

그게 내 몫이다.

강연 중 TVN과 TBWA가 공동기획해 제작한 '오! 진짜 짧은 다큐'를 몇 편 틀어줬는데요. 그 중 <겸재 정선> 편을 튼 후 다시 한 번 발상의 중요성보다 실행력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미이어교육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분명 참여자들로부터 아이디어를 끌어내고 그것을 발전시켜서 결과물로 엮어내는 과정 그 자체일 것입니다. 때문에 상투적인 말묶음인 것 같지만 사실 이런 이야기를 한 번 더 되새김질 해보는 것 만으로도 저에게는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컨퍼런스에서 가장 강력한 자극이 되었던 세션은 JTBC의 남궁유 디자인 총괄의 강연 시간이었습니다. 전사적 브랜딩 전략을 바탕으로 출판, 영상, 음악, 공간을 아우르는 '우리만의 목소리를 갖기'위한 시도들과 성취들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번 어도비 컨퍼런스는 구체적인 기술적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시간이었다기 보다는 추상적이지만 한 동안의 동력이 될 자극을 많이 얻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첫 만남은 강구안 골목 73걸음여행연구소였다. '서피랑'으로 검색 중 알게 된 분을 만나 볼 요량으로 통영에 내려갔다. 73걸음에 들어가 여차해서 왔다하니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한 쪽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 개성 강한 연구소 내부 장식과 창 너머 강구안 골목에 무심한 눈길을 뿌리며 생각했다. 여긴 동피랑인가? 서피랑인가?


잠시 뒤 예의 개량 한복 차림의 장원쌤이 인사를 하시며 들어 왔고 안쪽 테이블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앉고 보니 그냥 손님인 줄 알았던 분은 온나의 대표이신 똑소리나는 미연쌤이었고, 그냥 무뚝뚝한 사장님인 줄 알았던 분은 의외로 다정하고 우직한 우현쌤이었다. 명함과 인사말을 건넨 뒤 우리동네TV교실 사업에 대해서 설명했다. 왜 서피랑을 선택했는지와 함께. 조금은 판촉사원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기대했던 것보다 더 서피랑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분들이라 한 편으로는 조금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참여의사를 확인한 뒤 함께하실 분이 더 있어야 된다는 부탁을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한 주 뒤 73걸음여행연구소에서 모였다. 통카롱을 운영하시는 은영쌤과 현주쌤, 커피마마를 운영하시는 형범쌤, 우크렐레 강사이신 근혜쌤과 멸치이야기라는 건어물 쇼핑몰을 운영하시는 현아쌤까지 8분과 함께였다. 장원쌤의 수고 덕분이다. 다시 한 번 CJ헬로비전 우리동네TV교실 사업과 일정에 대해 소개를 하고 참석하신 분들과 일정을 조율했다.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보다 좋은 분들과 뜻 있는 일을 함께 하게 되었다는 기쁨과 설레임이 큰 만남이었다. 이름처럼 맛있는 진미식당에서 함께한 점심은 보너스.



다시 한 주 뒤 우리는 명정동주민센터 동장실에 모였다. 동장님의 특강을 듣기 위해서였다. 첫 시간에는 사정이 있어 참석하지 못했던 포에티크의 우경쌤과 센터 간사이신 경화쌤도 함께했다. 동장님으로부터 서피랑 마을의 향토사와 개발 계획을 듣고 평소 궁금했던 것을  묻고, 아이디어를 건의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리라 생각했다. 때문에 2차시를 <우리지역 이해하기>라는 이름으로 정하고 명정동주민센터 김용우 동장님의 특강 시간을 마련했다. 아마 보통 관, 공무원에 대해 가지고 있는 선입견이 있을텐데 김용우 동장님은 3시간 여의 만남 동안 그러한 선입견을 완전히 깨는, 언제나 예외는 있다는 걸 보여주는 분이었다. 동장실 책상 한 켠에 벗어 놓은 3켤레의 신발 중 장화를 보며 보통분은 아니겠구나 짐작은 했다. 걸출한 입담과 실행력, 무엇보다 서피랑 지역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느끼게 하는 분이었다.


아무래도 서피랑 홍보 영상 작업이다보니 동피랑과 끊임없이 견주어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시소 게임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방향을 찾기 위해 동피랑이 걸어온 길을 되짚어 볼 뿐이다. '비랑'은 비탈의 통영 사투리인데, 세병관에서 동쪽에 있는 비랑은 '동피랑'으로, 서쪽에 있는 비랑은 '서피랑'으로 불린다. 동피랑은 익히 알려져 있듯 통영항과 중앙시장에서 인부로 일하던 사람들이 기거하면서 만들어진 평범한 달동네 마을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2006년 통영시는 동포루 복원과 공원 조성을 위해 마을 철거 계획을 발표한다. 물론 오갈데 없는 주민들은 반대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푸른통영21이라는 시민단체에서 공공미술의 기치를 걸고 2007년 동피랑 벽화공모전을 열게 된다. 그 후 벽화가 입소문이 나면서 통영시는 철거 계획을 대폭 수정해 동포루 복원에 필요한 세 채만 철거했다고 한다. 그렇게 동피랑은 전국적인 관광 명소가 됐다. 


반면 서피랑은 그런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없다. 오히려 서피랑에는 1945년 해방 후 가정집 형태의 윤락가가 형성돼 통영의 수산업이 번성했던 1980년대까지 호황기를 누렸다고 한다.  한 때 300여 명의 윤락여성이 '야막골'이라 불렸던 서피랑 홍등가에서 종사했던 때도 있었다고하는데, 수산업 쇠퇴와 함께 퇴락했다고 한다. 2003년도까지 남아 있던 여성 한 명이 마지막이었다고 한다. 성매매특별방지법이 시행된 건 2004년 9월인데 그 이전에 이미 야막골은 역사가 된 듯 하다.


그런 음울한 역사를 가진 서피랑이지만, 통제영에서 충렬사로 이어지는 유적지와 박경리, 김상옥 선생의 생가, 백석이 친구의 결혼식에서 처음 만난 '란'에게 반해 통영을 몇 번이나 찾았지만 만나지 못해 낮술을 하고 충렬사 계단에서 썼다는 <통영2>라는 시 등 이야깃거리와 볼거리가 너무나 풍부하다. 그래서 이를 조금 더 다듬고 알리기 위한 작업이 진행 중이다. 서피랑에 내재된 문화적 가치를 드러내는 과정인 것이다.



3차시는 은영쌤의 통카롱에서 진행했다. CJ헬로비전 우리동네TV교실 때문에 처음 통영을 찾은 날 서피랑 지역을 둘러보며 아직 레코드 가게가 있다는 것이 너무나 반가워 사진을 찍어 미디어센터 단톡방에 공유했다. 그런데 그 때 미처보지 못한 게 있으니 그 레코드 가게 2층에 있는 통카롱이었다. 통영의 온화한 기후에도 쉽게 변질되지 않아 꿀빵은 오랫동안 군것질 거리로 사랑을 받아 왔다고한다. 동피랑으로 가는 길목에 가장 많이 파는 품목도 꿀빵이다. 그런데 꿀빵은 요즘 세대 입 맛에 맞는 먹거리는 아닌 듯 통영 여행 후기에서 꿀빵을 맛있게 먹었다는 글은 좀처럼 찾기가 어렵다. 통카롱은 그런 문제의식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요즘 세대가 좋아하는 마카롱에 통영의 상징성을 담는 작업을 너무나 사랑스럽게 이루어 가고 있다. 밀가루를 사용하지 않거나 단 맛을 줄이고 크기는 키우는 등의 숨은 차별화 전략도 있다. 말이 긴 건, 교육을 떠나 이미 이 곳의 팬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3차시는 통카롱의 두 쌤들이 준비해주신 빵과 마카롱, 커피를 먹어가며 촬영의 기초와 카메라 사용법에 대해 알아보고 실습하는 시간을 가졌다. 강의는 역시 미디어센터의 기둥 중곤쌤이 준비해서 처음 카메라와 캠코더를 사용해보는 분들이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조곤조곤 설명을 해주셨다. (착한 사람은 강의도 착하게 한다!) 이론 수업 후 실습은 3개조로 나누어 진행했다. 캐논 5D Mark 2를 이용한 인터뷰 촬영팀, 소니 핸디 캠코더를 이용한 서상옥 거리 촬영팀, 고프로를 이용해 중앙시장 소개 영상 촬영팀으로 각 팀이 돌아가며 세 개의 다른 장비를 사용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DSLR을 이용해 인터뷰를 촬영하는 팀은 공통 질문이 세 개 주어졌다. 둘은 서피랑은 OOO이다와 어떤 영상을 찍고 싶은지에 대한 물음이었다. 답변을 보면 함께 하시는 통영쌤들이 서피랑을 얼마나 아끼고 알리고 싶은지 알 수 있다.


형범 쌤

- 서피랑은 통영 여행의 베이스캠프다. 서피랑에서 통영 여행이 시작된다. 이곳에서 통영 여행을 계획하고 다른 곳으로 나아가는 곳으로 만들고 싶다.


장원 쌤

- 서피랑은 꿈동산이다. 여러 작가 선생님들이 예술가들이 꿈을 키웠던 곳이고, 우리가 꿈을 키워가는 곳이기 때문에 꿈동산이다.

- 서피랑의 무한한 테마에 깜짝 놀라고 있다. 볼매다. 통영관광일번지라는 주제로 서피랑에 오르면 통영이 보인다는 주제. 박경리, 윤이상, 김상옥, 유치환, 백석까지 아우르는 예향의 도시 통영이 서피랑과 함께 문화예술의 고향으로 다시 성장하는, 예향의 도시 시즌 2.


은영 쌤

- 서피랑은 살아 있는 숨쉬는 보물창고이다.

- 동물과 함께하는 서피랑. 모두가 같이 함께하는 서피랑.


우경 쌤

- 서피랑은 찬찬히 둘러보며 사색하며 산책할 수 있는 곳.


현아 쌤

- 서피랑은 추억이다. (아이들이 놀러가는 것 자체를 어른들이 꺼려했다. 지금은 예쁘게 변하고 그런 부분이 없어졌다.)

- 아이들을 위주로 해서 찍으면 좋겠다. 어릴 때 명정동에서 많이 놀았는데, 그런 부분을 같이 공감할 수 있는 영상을 만들고 싶다. 99계단, 서피랑 언덕, 골목골목을 많이 누비고 다녔다. 그런 부분이 서민적이면서도 재미있는 놀이 공간이었다. 그런 부분을 알려주고 싶다.


우현 쌤

- 서피랑은 통영의 보물창고다.


미연 쌤

- 서피랑은 사랑이다. 너무나 수많은 러브스토리가 숨어 있다. 잘못된 만남부터 안타까운 사랑까지. 찾아보면 엄청 많은 사랑 이야기가 있다. 거기 안에서 나와 닮은 사랑 이야기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 사랑. 골목골목에 가로등 밑에 보면 되게 으슥한 곳도 많고 분위기 좋은 곳도 많고.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걷고 싶은 길. 내가 걸으면서 느끼는 감정들을 담고 싶다. 걷는 길에서 느껴지는 시간을 담고 싶다.


다음주에는 서피랑 홍보 영상 제작을 위해 기획회의를 하고, 그 다음주부터는 촬영을 해야된다. 여간 고민이 아니다. 기획을 하는 것도, 촬영하고 편집하는 것도 모두 함께하시는 통영 쌤들의 몫이지만 한 발 앞서가야되는 조력자 입장에서는 그 못지 않게 고민된다. 3년 후의 서피랑의 모습이 10이라 했을 때 현재의 모습은 채 2라도 될까싶을 정도이다. 때문에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지만 영상으로 매력적인 홍보 영상을 만드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그 과정에 이렇게 좋은 분들과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더 집중해서 조금 더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시간으로 만들어야 겠다. 생계 때문에 누구보다 바쁘실 분들도 이렇게 애쓰시는데.


어쩌면 핵심요약 >>>

그간 서피랑에 다니면서 알게 된 곳. 나름 맛집과 멋집 추천. 글에도 나왔던 <진미식당> 여기 7,000원짜리 정식 끝내준다. 지금가면 귀한 시계꽃도 볼 수 있다. <서피랑 떡복기집> 떡볶이 국물이 끈적거리지 않고 너무 달지 않으면서 땡초 때문인지 매콤하면서도 깔끔하다. 3,000원. 물론 튀김과 함께 먹어야 비로소 떡볶이는 완성된다. <원조시락국> 서호시장에서 통영농협 쪽으로 나오면 쉽게 찾을 수 있는데 가마솥에 끓인 장어국같은 시래깃국이 일품이다. 특히 식탁에 냉테이블을 넣어 반찬을 샐러드바처럼 떠 먹을 수 있게 해뒀는데 태어나 처음보는 광경이라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5,000원. <통카롱> 아, 여기 정말 좋다. 마카롱 좋아하시는 분들, 통영 왔다가 선물 사갈 만한 거 못 찾으신 분들 꼭 들려보시길, 강권. <73걸은여행연구소> 여기가면 이곳에서만 구할 수 있는 백석 기념 엽서와 책갈피가 있다. 소장님이 전직 자전거 선수셨던지라 자전거 대여 시 정말로 전문적인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이 곳의 모든 인테리어 역시 소장님 솜씨. 이곳에 파는 기념품들 역시 지역 사진가와 협업한 작품으로 '떼다 파는' 물품이 아니다. 올 여름에는 진정한 백석 초판본을 독점 판매하게 된다고 한다.


글: 진주시민미디어센터 김민재


요즘 저는 일주일에 한번, 발달장애인들과 여러 가지 미디어로 스스로를 표현하는 교육을 하고 있답니다.



미디어 시간이 제일 좋다고 반겨주는 분들을 보면 저도 늘 기분이 좋아요. 

평소에 접하지 않았던 다양한 것들을 같이 보고 나누고 사용해보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감정표현에 솔직한 데이빗(영어이름)은 "아 미디어 시간보다 영어시간이 좋아~ 데이빗 잉글리시 할래요" 라고 말하기도 하지만요.



미디어 교육을 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얼마나 이해를 하고 있을까? 인데요.

사실 걱정과 우려와 달리 카메라만 있다면 언제나 생각지도 못한 멋진 것들을 담아오세요. 



이 사진은 디카 배우기 시간에 혼자 찍어온 사진이에요. 

평소에는 말 한마디 없이 웃고만 계시지만 이렇게 혼자서 찍은 사진을 보니까, 

이건 어떤 마음으로 찍었을까? 늘 궁금해져요. 

아무리 물어도 대답은 잘 없으시지만요. 



이번에 우리가 만들어볼 영상은 '행복'에 관해서예요.

평범한 우리 삶에 영화처럼 크고 엄청난 이벤트가 없더라도, 

우리는 늘 소소한 행복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일상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하루 중 언제가 가장 기분이 좋아요? 

가령 생각보다 일이 빨리 끝나서 빨리 퇴근할 때라거나...... 



이렇게 꼼꼼하게 스토리 보드도 써봤답니다. 

저는 사실 성격이 아주 급한데요. 

발달장애인 미디어 교육을 할 때면 늘 천천히, 괜찮아, 이런 말을 많이 쓰는 것 같아요. 

사실 비장애인이라면 글 한 줄 쓰는데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겠지만 

단어 하나를 쓰는데도 아주 큰 고민을 필요로 하기도 하거든요. 

그렇게 나온 것들을 온몸으로 최선을 다해 칭찬하고 격려해요. 

미디어 교육을 통해서 조금 더 한 발짝 나아가길 바라며, 하고 싶은 이야기를 꺼낼 수 있도록. 



진행 과정이나 결과물 영상을 자주자주 보여주고 싶고 하지만, 

사실 초상권의 문제로 인해 공개하기가 쉽지가 않아요. 

그래도 우리 센터에서는 늘 이런 교육을 하고 있답니다. 

미디어 교육으로 더 많은 분들을 만날 수 있도록 센터에 계속 지속적인 관심 부탁 드려요 :D


글: 진주시민미디어센터 정수진



오월 초 연휴 기간에 시장에 들러 모종을 사와서 옥상 상자텃밭에 옮겨 심었지요. 아직 비어 있는 상자들이 남아 있지만 곧 채울 거에요.

작년엔 환경련에서 활동하시는 센터 후원회원님께서 가져다 주신 해바라기를 심기도 했었지요.

방아, 고추, 방울토마토, 가지 등이 자랍니다. 부추와 상추, 쌈채소 등을 더 심을 생각이에요.




참 좋은 공간입니다. 


활동가들 중에서 가장 많이 이용을 하지요. 유일한 흡연자이니까요.

이월에 꽃바람 공방에서 센터 식구들과 목공예 체험활동을 했어요. 맘씨 좋은 강선녀 회원님의 도움으로 말이죠.

그때 만든 벤치를 가져다 놨습니다. 서서 피우면 힘드니까요.




위에 놈은 옥상에서 발견한 달팽이에요. 바싹 마른 벽을 타고 오르더군요.

의외로 많은 것들이 있어요. 센터 옥상에는...




옥상에서 보는 아침 일출이에요. 나름 볼만 하죠? 하지만 자주 할 짓은 아니지요. 밤샘야근은... 


센터 옥상에는 의외로 많은 것들이 있어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죠. 그런 공간입니다.

미디어센터로 놀러 오시면 옥상에서 함께 끽연할까요? 


구글 임팩트 챌린지 설명회에 다녀왔습니다. 한국에서는 올 해 처음 시행되는 GIC(Google Impact Challenge)에 센터가 참여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해서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사회적기업으로서의 미디어센터의 고민을 더 넓은 관점에서 또는 관점을 달리해서 바라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는 기대로 서울행을 택했습니다.

더 나은 세상, 더 빠르게
A Better World, Faster



구글이 스타트업 지원을 위해 운영하는 구글 캠퍼스가 지난 해 5월 서울에도 문을 열었습니다. 영국 런던,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입니다. 대치동 오토웨이 타워 지하 2층에 있는 데요. GIC 설명회는 이곳, 구글 캠퍼스 서울에서 열렸습니다. 


행사는 구글 코리아 존 리 대표의 환영 인사에 이어 구글오르그 마이카 바르만 매니저와 지난 해 미주 GIC에서 결승에 진출해 25만 달러의 펀딩을 받은 토킹포인츠의 임희재 대표가 화상으로 발표를 진행했습니다. 마이카 베르만 매니저는 기술을 활용한 혁신과 기술을 활용하지 않은 혁신의 예 등을 들려주었고, 임희재 대표는 GIC 준비 과정과 GIC 이후 달라진 점, 다시 한 번 도전한다면 이렇게하겠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미주 지역은 결승에 진출한 10개의 팀 모두 온라인 투표로만 진행됐기 때문에 임희재 대표 역시 온라인 투표 홍보의 중요성에 대해 계속 언급했습니다. 한국에서는 프로젝트 안을 제출한 팀 중 지역사회 영향력, 기술과 혁신성, 확장성, 실행가능성 기준에서 평가해 10개 팀을 결승에 진출시켜 4개의 팀에 5억 씩을 지원해주는 데요. 오로지 1개 팀만 온라인 최다 득표로 선정하고, 나머지 세 개 팀은 멘토단의 평가가 반영되는 시스템으로 선정하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GIC는 투표 홍보보다 확장력 있고 실현 가능한 혁신성이 더 중요할 것 같습니다. 

이어 이번 GIC의 공식 파트너사인 아쇼카 코리아의 정호윤 디렉터와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의 이은주 과장의 프리젠테이션이 이어졌습니다. 이은주 과장의 발표는 소셜벤처 경진대회 홍보와 국내의 혁신적인 사회적기업 사례에 집중했습니다. 정호윤 디렉터는 제 3 섹터의 사회적혁신기업가의 사회적 문제 인식에서부터 혁신으로 이어지는 문제 해결 과정과 ICT가 사회적혁신에 어떻게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는지, 3섹터의 문제점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해 포커스를 맞췄습니다.


2부 행사에서는 아쇼카의 노유진 매니저가 소셜 임팩트를 이끌어낸 혁신적인 아이디어들을 디지털 역량 강화, 데이터, 플랫폼의 3가지 테마로 발표를 했으며, 구글 코리아의 김민현 기술 엔지니어는 NGO 사업에서의 기술에 대해서 다루었습니다. 그리고 구글 코리아 안재균 디지털마케팅 사업본부 팀장은 좋은 프로젝트 계획서의 조건과 구성에 대해서 다루었습니다.

마지막 세션인 질의응답 시간에는 여러 질문이 나왔는 데요. 그 중 몇 가지만 추려보면 이렇습니다.

질) 담당자가 외국인데 영어로 지원서 작성 등 문의 사항에 대해 지원가능한가? 답) 지원서는 한글로만 받지만 문의 사항에 대한 답변은 한, 영 둘 다 지원 가능하다.

질) 사업기간을 어느 정도로 잡는 게 좋은가? 답) 대략 18~24개월이 가장 많았다. 제약은 없다. GIC가 해마다 열리지 않고 2~3년의 터울을 두고 진행되는 것도 실제 프로젝트가 사회적인 영향력을 실현하는 것을 판단한 뒤에 진행되기 때문이다.

질) 글로벌 약자를 타게팅해서 솔루션을 만들고 있다. 답) 우리 사회에 임팩트를 미칠 수 있는 것이라면 고려할 수 있다. 한국에서 열리는 GIC는 무엇보다 한국인들에게 직접적인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프로젝트여야 한다.

질) 진행 중인 프로젝트로 GIC에 지원할 수 있나? 답) 있다.

질) 지원금은 인건비와 운영비에 사용 가능한가? 답) 가능하다.

질) 대북지원에 관련된 내용이 있을 경우 자격에 제한이 있는가? 답) 추후 논의가 필요하다.

GIC는 두 차례의 설명회 이후 프로젝트에 관해 실질적인 조언을 들을 수 있는 멘토링 워크숍 또한 두 차례 진행하지만, 미디어센터에서는 이번 GIC에 지원을 하지 않을 계획이라 멘토링 워크숍에는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2005년에 설립된 진주시민미디어센터, 이제 11살이 됐습니다. 환경도 많이 변해 <커뮤니케이션 권리 확보>라는 센터의 운영 취지도 조금은 더 유연하게 해석하고 다양하게 대응해야 될 필요를 느낍니다. 지역사회에서 우리 센터가 할 수 있고 해야하는 선택과 당위의 몫, 그 몫을 규정하고 비영리민간단체로서의 재정적 한계를 어떻게 극복하며 풀어낼 지 생각해봅니다. 이번 GIC 설명회는 이러한 고민을 어떻게 혁신적인 방법으로 풀어낼지, 확장성을 가질 수 있게 만들지, ICT와 연계시킬 수 있는 부분은 또 없을지 등 여러가지 방법론적인 고민과 함께 본질적인 문제 정의에 대해 곱씹어 질문해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번 GIC 설명회에 소개된 다양한 사회적혁신기업 사례를 모아서 공유하겠습니다.


글: 진주시민미디어센터 장비 담당 김민재




2월 25일과 26일에는 입체 예술가 강선녀 샘이 운영하시는 꽃바람공방을 찾아 소품을 하나씩 만들어 보며 레크레이션 시간을 가졌습니다. 카메라와 마우스를 내려 놓고 직소기와 타카 등의 낯선 장비를 들고 열심히 작은 가구를 만들어봤습니다. 


개성 강한 센터 활동가들은 만들고 싶은 것도 각자 달랐는 데요. 센터 내 유일한 흡연가인 곤샘은 끽연의 즐거움과 비애를 함께 해 줄 벤치를, 마이너스의 손 수진샘은 침대 옆에 둘 작은 다용도 탁자를, 물 좋고 공기 좋고 전화 잘 안 터지는 산청에 사는 승아샘은 우체통을, 예매의 달인 정주샘은 누워서 책을 보거나 컴퓨터를 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작은 책상을 각각 만들었습니다.







센터의 2월은 대외적인 활동은 뜸하지만, 각종 기획서 작성과 여러 사업의 밑그림을 그리고 포석을 준비하는 시간이라 내부적으로는 토론, 토의 시간이 길어 오히려 많이 지치는 때이기도합니다.  선녀샘의 도움으로 마련된 이번 공방체험이 센터 활동가들이 그간의 스트레스도 풀고 에너지도 충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충전된 힘으로 진주시민미디어센터, 올 해에는 더욱 더 의미있고 다양한 사업을 왕성하게 펼쳐나겠습니다! 는 뜬금없는 다짐을 해봅니다. 








* 도움을 주신 선녀 샘은 경남문화예술회관 근처에 멋진 게스트하우스 뭉클게스트하우스도 운영하시고, 진주 유등축제와 각종 문화예술 행사에 설치미술 작업을 하시는 등 정말 다방면에서 재능을 뿜어내시는 열정적인 예술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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